[펜그림 서사시]1. 지껄이기

왕세기 402년

요새 로칸이 매서운 북풍을 뒤집어쓰고 서 있었던 것도 이미 백년이 훌쩍 넘었다.

세월은 단단하게 구워 쌓아올려진 벽돌의 무리를 깎아내지는 못했지만, 벽돌 사이사이에 듬뿍 발려 있던 회반죽은 이제 앙상해 보일 정도로 털려나갔다. 부서지고 무너진 곳을 보수한 흔적도 여기저기 남아 있었는데, 이를테면 정문 왼쪽으로 수술자국처럼 박혀 있는 거대한 자연석은 수십년 전 그 어느 순간의 급박함을 적나라하게 웅변하고 있다.

요새는 북방인들에게는 '람캄'이라고 불렸다. 로칸과 발음도 비슷한데, 북방인들의 말로 이정표라는 뜻이다. 북방의 거대한 초원은 쏟아지듯이 남쪽을 향해 완만한 경사를 이루었는데, 도도하고도 격렬한 엘마탄 강의 물줄기를 만나기 직전, 북방의 말 탄 여행자들이 지평선에서 발견하는 것이 바로 로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널찍하고 밋밋하게 생긴 한 줄기 감시탑이었다.

예로부터 로칸은 북방인들과의 교류와, 전쟁에서 중심지 역할을 했다.

요새는 평시에는 약 백 명 정도의 무장한 군인을, 전시에는 그 두 배 정도의 민간인을 추가로 수용할 정도의 작은 규모로, 불규칙한 원형 외벽 안에 감시탑 하나가 덜렁 서있는 단순한 구조다. 벽과 탑은 모두 벽돌로 보강되었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총안이 곳곳에 뚫려 있어서 활을 쏘거나 창으로 찌를 수 있다.

요새 자체는 그뿐이다. 바로 옆에는 민가가 몇 채 있고, 어렵게 만들어 놓은 작은 농장들이 있다. 농장은 금새 잡초들에게 침식당했다. 주둔병들이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도, 밀이나 보리를 제대로 키워내기에는 땅은 너무 척박했고 물은 너무 부족했다. 반면 잡풀들은 어디선가 날아들어 끝없이 솟아나왔다. 주변을 몽땅 불태워도 소용이 없었다. 농장에서 그나마 제대로 소출이 있는 것은 나이든 병사가 치던 꿀벌 뿐이었다. 그는 이 꿀을 전부 술 담그는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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